만해 한용운 '님의 침묵' 100년의 발자취를 따라서

서울 성북동 성북근현대문학관 아카이브 특별전 관람 뒤 '심우장'까지
시집 <님의 침묵>이 나온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다. 가을 햇살이 가득한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을 걸어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성북근현대문학관>을 찾았다. 지난 15일
시작한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2026년 케이(K)-뮤지엄 지역순회 전시 및 투어지원사업의 일환이다. <성북근현대문학관> 전시에 앞서 5월 <만해기념관>, 6, 7월 <홍주성역사관>, 8, 9월 <한
국시집박물관>을 거쳤다.
<님의 침묵> 판본 100년의 흐름을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1925년 8월 29일 내설악 오세암에서 탈고한 원고는 이듬해인 1926년 5월20일 서울 회동서관에서 초판본으로 세
상에 나왔다. 1934년 7월30일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재판을 냈다.
다음 판본은 1944년 시인이 작고하고 우리나라가 해방한 이후의 일이다. 1950년 4월 5일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초판이 나온 이후 1973년 7월 25일 <한용운 전집> 전6권
이 발행됐다. 1981년 12월 20일 만해사상연구회가 <님의 침묵> 정본을 펴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님의 침묵>을 출판하고, 여기에 서울대 등 대
학출판부도 가세해 오늘에 이른다. 180여 종.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에는 회동서관 초판본부터 최근 발행된 책까지 지난 100년 동안 출간된 다양한 모습의 <님의 침묵>이 순서대로 진열돼있다. 특기할 것은
1926~2026 100년 동안 발행된 <님의 침묵> 커버스토리를 스리디(3D) 쇼츠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하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처럼 비대칭으로 쌓아올려진 브라운관 모니터 속
에서 <님의 침묵>의 영상이 흐른다.
님은 누구인가, 한용운은 누구인가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 성북구청에서 펴낸 안내책자는 '님을 찾는 사유의 여정'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생각한다. 이제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님을 조국으
로, 연인으로, 아니면 부처로 이런저런 해석을 내놓았지만 그것들은 다 맞기도 하고 다 아니기도 한 것이 아닌가. 시인 자신도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님
의 침묵』 군말)라고 말하고 있으니.
님만 그런게 아니다. 또 한용운(1879.8.29.~1944.6.29.)은 누구인가. 님을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듯이 한용운 또한 어느 한 인물로 규정지을 수 없다. <님의 침묵>만 놓고
보면 시인이지만, <조선불교유신론>을 설파한 개혁승려이기도 하고, 민족대표 서른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한 까닭이다.
남들은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역할을 남들보다 서너갑절은 더 치열하게 잘 해낸 표본으로서 우리 근현대사에 한용운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고 하면 지나칠까.
조지훈은 한용운 선생을 "혁명가이며, 선승이며, 시인이 하나로 어우러진 존재"라고 평했다.
성북근현대문학관' 지척에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지낸 '심우장'이 있어 특별전을 보고 들러보기 좋다. '심우장'은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심우도'에서 가져왔다. 1933년 만해는 이곳에 조선총독부가 보기싫다해서 동북향으로 집을 짓고 1944년 입적할 때까지 살았다.
심우장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립지사 일송 김동삼(1878~1937)과의 일화도 전해져온다.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등과 서간도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한
김동삼 선생이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일제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으니 만해가 나서 시신을 심우장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러주었다.
'성북근현대문학관' 특별전에는 "당시 아버지 조헌영과 김동삼의 장례에 참석했던 조지훈 시인은 만해의 지조와 품격에 크게 감동했고, 이는 훗날 <한용운 전집>을 간행하는
데까지 이어졌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9일, <기억할 만해-기룬 것들의 노래> 예술제도 열려
심우장에서는 오는 19일 '기억할 만해-기룬 것들의 노래' 예술제도 열린다. 오후 4시부터 무형무산연합회의 '살풀이'와 '태평무'에 이어 극단 예모리의 창작극 <기룬 것들의
노래>가 펼쳐진다.
심우장 마당에 들어서니 파란 하늘 아래 이리저리 가지를 뻗치고 서있는 소나무가 방문객을 반긴다. 수령 110년 추정. 그렇다면 아마도 만해선사의 마지막도 함께 했을 것이
다. 줄기를 만져보니 단단하고 따뜻했다. 늦은 가을 햇살 아래 만해의 오도송(깨달음의 노래)이 걸린 마루에 걸터앉아 만해의 치열했던 삶을 복기하듯 <님의 침묵>을 천천히
읊어보았다.
출처: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