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들고 길 위로, ‘같이(가치)책 문학기행 체인지’ 빛났다
서원중 '낭독 이어달리기' 추천 도서를 탐색하는 하순옥 사서 선생님.
[충청리뷰 이기인 기자] 충북교육도서관(관장 이상래)이 ‘2025 같이(가치)책 문학기행 체인지(體人智) 결과 나눔 한마당’을 열고 1년간의 성과를 공유했다.
2024년에 시작해 올해로 2년 차를 맞은 이 사업은 문학의 배경지와 작가의 삶을 직접 찾아가 ‘몸(體)·사람(人)·지혜(智)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학생 주도형 프로젝트 문학기행이다. 올해는 △초등 7팀 △중등 13팀 △고등 2팀, 22팀 111명이 참여했다.
올 한 해 일정은 촘촘했다. 4월 지도교사 협의회를 시작으로, 5월 학생발표회와 작가 강연을 통해 주제와 동선을 스스로 설계했고, 기수별로 현장 기행을 진행했다. 중등 1기(6.10~13)는 박경리 『김약국의 딸들』과 박현숙 『아미동 아이들』을 품은 통영·부산을, 초등 기수(7.24~25)는 옥천·보은에서 정지용·오장환 문학길을 밟았다.
중등 2기(9.23~26)는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박태원 『천변풍경』을 화두로 인천 차이나타운·만석동, 서울 청계천을 탐방했다. 기행 이후 각 동아리는 기행문, 브이로그, 전시 등으로 결과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학생 경험을 정교하게 ‘학습’으로 환류시킨 운영이 돋보였는데, 그 중심에는 충북교육도서관의 김병남 연구사가 있다. 그는 이번 문학기행 체인지 운영의 실무 총괄을 맡아, 기획·현장·사후 활동까지 전 과정의 흐름을 설계한 핵심 담당자다. 그는 도서관–학교–현장을 잇는 전 과정 운영 총괄을 맡아 기획과 안전, 자료 큐레이션, 자율탐방 코칭, 사후 공유까지 전 과정을 이끌었다.그리고 김 연구사의 기획은 참여학교의 교사(사서)들로 인해서 그 과정이 모범적으로 이뤄졌다. 그들 중에서도 하순옥 사서(서원중)의 힘은 단연 돋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현장이 텍스트를 다시 열다.
하 사서에 따르면 중등 2기 인천 여정에서 학생들은 우리미술관 앞 하얀 자갈길이 ‘집 한 채의 크기’라는 해설을 듣고 말을 잃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좁은 방에서 가족이…”라는 탄식과 함께, 『괭이부리말 아이들』 속 쌍둥이 자매의 일상이 ‘이해’에서 ‘체감’으로 이동했다. 서울 청계천에서는 청계천박물관 전시와 ‘고바우’ 김성환의 기록을 통해 『천변풍경』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학생들의 자발적 결심이 이어졌다.
인천근대문학관을 찾은 서원중 학생들
성북 ‘문화공간 이육사’에서는 시 「청포도」와 전시 공간이 겹쳐지며 “청포도만 보면 이곳이 떠오를 것”이라는 고백이 나왔다. 다음 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어떻게 견뎠을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묵념이 이어졌다. 비가 스치던 그 순간, 한 학생은 “독립운동가들의 눈물일지도”라고 적었다. 텍스트는 그렇게 길 위에서 다시 쓰였다.
이번 사업은 ‘관광형 답사’가 아닌 프로젝트 학습이다. 동아리 조직–사전 조사–학생발표회–현장 기행–사후 공유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 하 사서는 독서토론 마중물과 자료 상호대차, 현장 가이드 대체 자료 등을 배치했다. 자율탐방일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동선을 짜고, 지하철·버스를 갈아타며 길 찾기 앱을 익혔다.
자율탐방일에 별마당도서관을 찾은 서원중 학생들
2인 1실로 생활하며 약속 시간 맞추기, 역할 분담, 발표 전원 참여까지 자기효능감·협업·책임감이 자라났다. 하 사서는 “3박 4일을 ‘몸으로 버텨낸’ 힘과 서로를 배려하며 계획을 수정해 가는 과정이 체·인·지의 동시 성장을 이끈 핵심”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이 ‘허브’ 하순옥 사서의 현장 인솔 '모범 운영'
하 사서는 도서관의 강점을 십분 활용했다. 주제도서와 연계도서를 학교도서관끼리 상호대차해 자료 부족을 해소하고, 탐방지와 관련한 책들을 북 큐레이션으로 묶어 사전·사후 활동과 자연스럽게 잇도록 했다. 학교도서관은 동아리 모임과 독서토론, 결과 정리까지 이어지는 베이스캠프가 되었고, 그는 “문학기행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독서의 시작이 되도록 돕는 것이 사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충북교육도서관 청소년공간 빛나래에서 도서부원 학생들이 견학하는 모습
현장에서의 디테일도 빛났다. 인천 근대 역사길처럼 해설사가 없는 구간에선 학생 이해도가 떨어지는 한계를 지적하며 “지역 차원의 전문 해설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자율탐방비 1인 5만 원으로 서울의 식비·체험비·교통비를 모두 충당해야 했던 현실을 짚으며 “학생 선택과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예산 구조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동아리 운영계획 승인 시점과 사업 선정 공문이 맞물리지 않는 문제 역시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과제”로 남겼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중등2기 학생들
하 사서는 특히 사서의 역할을 “문학기행의 마중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학교도서관은 탐방지와 관련된 책을 미리 소개하고, 기행 뒤에는 사진과 기록, 질문거리를 다시 모아 전시와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문학기행을 다녀온 학생들에게는 여행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독서와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상호대차 체계와 학교도서관 기반 활동이 뒷받침될수록, 학생들의 읽기 경험이 단발성이 아닌 ‘축적’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작가 초청 강연 프로그램 현장 모습.
“문학은 삶을 이해하는 과정” 현장에서 얻은 질문
하 사서는 문학기행의 뜻을 이렇게 정리한다. “문학은 삶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책 속 인물·사건·배경을 따라 함께 여행하며 가치관과 세계관, 문학적 감수성을 기릅니다. 간접경험이 직접경험으로 확장될 때, 아이들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닿습니다.”
현장의 교사들도 입을 모았다. “환경·역사·문학을 엮은 자율탐방에서 학생들은 길 위의 질문을 스스로 만들고 답했다. 발표는 전원 참여로 바뀌었고, 독서는 ‘깊이 읽기’로 전환됐다.”
문학기행 체인지 결과나눔 발표회 모습.
하 사서는 이번 사업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문학기행은 친구와 함께 길을 걸으며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직접 묻는 과정”이라며 “책을 통해 쌓은 간접경험이 실제 공간과 사람을 만나며 확장될 때, 학생들은 삶과 진로, 관계까지 함께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하다면 매년 다른 지역, 다른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져 더 많은 학생이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등2기 학생들이 인천 차이나타운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책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도서관을 ‘내 방처럼’ 드나드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관심 있는 분야 서가에서 제목만 훑어보고, 눈에 들어오는 책을 잠깐씩 펼쳐보는 단순한 행동이 결국 자신의 진로와 연결되는 독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친구와 함께 도서관을 찾고, 책 속 한 장면을 실제로 경험해보는 미션을 만들어보라”며 “문학기행 같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책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학교도서관 행사 후 응모함 추첨 모습.
이상래 관장은 “문학기행 체인지는 몸근육과 마음근육이 함께 자라는 충북형 독서교육 모델”이라며 “내년에는 해설·안전·비용 구조를 더 촘촘히 보완해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체인지’는 책–길–사람–도서관을 유기적으로 잇는 운영의 힘을 증명했다. 그 중심에서 보이지 않게 흐름을 설계한 김병남 연구사의 전문성과 더불어 하 사서의 모범적 현장 인솔은, 공교육 현장에서 ‘도서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출처 : 충청리뷰(https://www.ccreview.co.kr)